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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야근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볼게요. 사실 야근이라기보다는 초과근무라고 불러야 하는데, 저희는 사실 야근을 별로 해본 적이 없어서 초과근무라고 해야 하죠. 그래서 저는 이제 캐나다 쪽에서 일하고 있고, 북미 쪽도 그렇지만 한국의 게임회사들에 비해서 저희는 야근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에요. 저희가 툭하면 가끔 오버타임 한다고 말하는데, 이제 오버타임이란 개념이 저희에게 초과근무거든요. 밤새 계속 일하는 것은 제가 지난 7~8년간 한 이틀 한 거 같아요. 새벽 2시 정도까지 했었거든요. 그 외 대부분은 보통 그렇게 많이 한 적은 없고, 제가 예전에 북미 취업 가이드에 대해서 밝혔듯이, 제가 야근했던 기간은 스페이스 마린 4년 일할 때, 1달간 밤 9시까지 3~4시간 더 일 한 거죠. 그리고 캡콤 있을 때는 2년 동안 야근을 1달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초과 근무했던 보상으로 이제 게임 출시 끝난 뒤 휴가를 받았죠. 근데 휴가 받은 게 야근했던 시간보다 더 길어요. 그렇게 받긴 받았는데, 가끔 회사에서 프로듀서나 위에 계시는 분들의 성향 따라 야근이라는 게 회사마다 달라요. 어떤 팀장은 직원들에게 야근시킬 때, "너 이 일이 뒤처져 있으니까 내일 들어와서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얘길 해요. 아니면 "내일 당장 안되면 모레 일 해라."라고 개별적으로 말을 하죠. 아니면 어떤 팀장들은 괜히 애한테만 혼자 야근하라고 말하기 미안하니까,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식구들이야. 모두 다 야근하자."며 모두 다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어요. 근데 제가 이런저런 팀장을 보고, 실제 이런저런 팀에서 조금씩 약근을 해본 결과, 팀원 전체를 다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생산성을 상당히 저하시키더라고요. 되게 웃겼던 게 뭐냐면, 만약에 정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야근을 하면,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할 일이 뻔히 보이잖아요? 야근 안 해도 처리할 일이 있으니까요. 야근은 하라 그러니까 밤까지 안 하면 괜히 눈치 보이는 것도 있고요. 위에서 말(명령)이 내려왔으니 (야근이) 없을 순 없잖아요? 예를 들어서 원래는 하루 8시간 일하는 사람이 야근까지 포함해서 하루 11시간 일해야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8시간 일할 것을 어떻게든 11시간으로 늘리는 거예요. 출근을 늦게 하는 것도 방법이고, 약간 점심을 좀 더 오래 먹는 것도 방법이고, 중간중간 딴짓하는 것도 방법이죠. 그래서 다른 모든 사람이 보기에는 '우리가 같이 야근을 하고 있구나!'라고 착각하죠. 근데 결과적으로는 어차피 원래 야근을 했던 사람은 야근을 하는 거고요. 그 외에 정말 책임감 있는 사람들, 홍익인간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야근하는 애들 일을 돕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달리는 경우가 있죠. 아니면 단순히 위해서 말이 내려왔으니까 더 열심히 하자며 그 사람은 열심히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의 일이 그 사람에게만 더 오는 거죠. 어느 순간 지쳐서 그 사람도 일에 손 놓게 되는 악순환이 있더라고요.
제가 생각할 때 정말 좋은 리더의 자질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일해서 거기에 대한 보상을 확실하게 주는 사람이라고 봐요. 그런데 같은 배에 탄 식구라면서 계속 단체적으로 몰아가다 보면, 인간이 그렇잖아요? 사실은 동기부여가 되어야 일도 잘하는 건데, 있으나 없으나 '나는 시간만 빼면 되니까'이런 자세를 가지면 가질수록 팀 사기 자체가 저하되는 문제가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팀 리더가 돼서는 (한국 사시는 분으로부터 이런 얘기도 가끔 들었죠) 광역 어그로를 엄청나게 끌고 있다고 하기도 해요. 팀장이 돼서 정말 욕만 먹는 분들도 성격상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지만, 그 외에 모든 사람한테 사랑받는 팀장도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어요. 팀장이 되고 사람을 관리한다는 입장에서는 자세가 된 사람들한테는 괜찮은 팀장이라고 인정을 받는 건 좋죠. 하지만 그런 거 아니면 그냥 말 그대로 일을 안 하려고 하고, 대충 자기는 일 미루면서 남한테 던져주는 그런 게으른 사람도 어느 회사에나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인정받고 칭찬받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렇게 집단주의로 몰고 가서 오히려 정말 열심히 일하던 사람까지 게으른 부류로 만드는 효과도 있더라고요.
1.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단 야근, 초과근무 이런 걸 피할 수는 없어요. 저희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고, 아무래도 마감이 있으니까 피할 수 없어요. 초과근무가 일 년 내내 반복되는 거라면 그건 당연히 사람을 덜 채용했기 때문에 인력이 모자라는 거죠. 그런 거는 회사를 나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런 회사에서 사람이 많이 나갈수록 회사도 조금씩 정신을 차려서 직원 복지향상에 조금 더 노력을 하고 인원을 좀 더 채용하려고 하거든요.
2. 정말 야근을 누군가에게 시킬 위치에 있는 분들이라면, 설마 내가 1~2명에게 욕먹더라도 정말 필요한 일이면 올바른 말할 수 있는 리더의 자질도 되게 중요해요. 저는 그런 리더들을 몇 명 봤고, 굉장히 좋게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은 실제 오래가더라고요. 그렇지 않은 리더들은 대충 여기서 2년 뭉개다가, 다른 데 가서 경력 삼아 다른데 2년 뭉개고, 밑천 보이면 옮겨 다니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또 이쪽 도시에서는 이미 안 좋게 소문이 퍼져서 다른 도시로 가는 이런 경우도 많이 봤어요. 근데 뭐 이것도 사는 방법이긴 한데, 저는 제가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저한테는 앞의 경우와 안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야근이 이거였고요. 정말 쓸데없이 모든 사람에게 "우린 팀이다. 우리는 모두 다 같이 도와야 한다."는 식으로 몰고 가서, 필요 없는 야근까지 지키면 사기 저하되고 팀 전체 분위기가 이상해져요. 그럼 야근이 끝나고 새로운 게임 개발 시작하더라도, 저번 게임에서는 대충 일 안 하고 대충 뭉개도 평가를 좋게 받는 사람들을 많이 보면서 '저 사람들한테 뭐 특별히 불이익 간 것도 없고, 나만 오히려 이용당했구나.'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결국에는 천천히 게임회사는 몰락해가는 거죠. 제가 예전에 다녔던 회사 하나가 그런 일이 있었어요. 천천히 회사가 죽어가는 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 회사에 몸 담는 게 별로 안 좋더라고요. 저는 꿈꾸고, 막 위로 올라가 보고, 성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제가 다니는 회사가 그 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전 오히려 스트레스받아서 다른 데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크더라고요. 아마 저처럼 그러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니까 회사 운영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그런 것도 좀 고려하셔서, 야근할 때도 합리적으로 정말 필요한 사람만 와서 하라는 게 좋죠. 그게 만약 그 사람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회사에서 플랜을 잘못 짠 거라면, 그 사람들이 고생한 만큼 어떤 식의 보상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휴가를 며칠 더 주던지 해서요. 아니면 뭐 고맙다고 선물을 사주는 것도 좋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 잘 다루는 비법이죠. 근데 제가 아직 회사를 크게 운영해 본 적이 없어서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제 생각을 나누고 싶었어요. 포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