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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국에 계신 어떤 분이 캐나다로 와서 좀 쉬면서 어학공부도 할 겸, 그러면서 북미 쪽 게임회사에 지원을 하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이분이 걱정하셨던 거는 '그러면 당분간 먹고살 게 없는데 어떻게 하냐? 당분간 좀 조금이라도 뭐라도 벌어야 자기 마음이 안심이 될 것 같다.'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근데 이 분이 저하고 예전에 영어로 프리토킹을 해보고 그랬는데 영어를 꽤 잘하세요. 그래서 제가 이분에게 그러면 번역 일이라도 하면 좀 버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얘기를 했더니 이 분이 저에게 번역 일은 어떻게 하면 되냐? 고 물었어요. 그래서 제가 드렸던 말씀은 ‘그냥 하면 돼요’ 였어요.
많은 분들이 상당히 번역자가 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도 몇 번 안 좋은 자세라고 말했듯이 ‘나는 모든 게 준비된 뒤에 일을 하겠다’는 자세인 것 같거든요? 어찌 보면 실수를 만들기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모든 게 자격증으로 되는 것처럼 말하는 한국의 그런 사회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근데 번역은 정말 그냥 하면 돼요. 제가 어떻게 했는지를 말씀드릴게요.
제가 처음에 캐나다로 이민을 오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저희 가족들은 이미 캐나다에 살고 있었어요. 저는 한국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접시 닦이부터 해 가면서라도 다시 게임 개발자가 돼야겠다 ’ 고 마음먹었어요. 근데 제가 법대 가서 고시공부하느라 게임 개발에서 손 놓은 지가 좀 됐었거든요? 한 6, 7년 동안. 이 공백기를 메워가면서 새로운 기술도 공부 해가며 결과적으로 내가 가려고 하는 게임 개발자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왕이면 접시닦이보다 더 돈이 되는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고민 끝에 나온 게 번역 일이었죠. 그때 웃겼던 게 뭐냐면 저는 사실 영어를 되게 싫어했어요. 영어도 되게 못했고 대학교 때도 영어를 D를 받을 정도로 (몽키. D. 포프 응?) 영어를 싫어했지만 이제는 캐나다에 살기로 했기 때문에 영어를 다시 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러고 캐나다에 6개월 정도 있었는데 그때 운 좋게 Dungeons & Dragons 3rd edition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팀에 들어갔어요. 한번 해보고 싶었고, 그 책도 관심 있었고. 제 마음가짐은 ‘영어는 못하지만 영어 의미는 한영사전을 찾아보면 보면 되니깐 내가 한국말을 하는 걸 잘 살려보자’는 거였어요. 그리고 ‘영어를 정말 모르는 게 있으면 통신으로 알던 미국의 사는 한국 친구들한테 물어보자’라는 마음가짐을 시작을 했죠. 그 6개월 동안 여러 사람하고 공동 작업을 했고, 다른 사람들이 번역한 걸 제가 정리를 해서 제 문체로 만드는 최종 감수를 맡아서 책의 절반 이상을 번역을 했던 걸로 기억해요.
번역이 끝나고 나서 ‘이걸 포트폴리오로 쓸 수도 있겠고, 곧 캐나다로 이민 가니깐 영주권자라고 하면은 출판사에서도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을 하겠구나...’ 이 생각을 하고 출판사 여러 군데에 이메일을 보냈어요. 출판사 홈페이지마다 번역자 구인 공고는 있더라고요. 결국에는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죠. 처음 면접 보러 갈 때는 엄청 떨렸어요. 왜냐하면 면접 때 갑자기 영어 질문을 하면서 ‘이거 번역해 보라고 시키면 어떡하나.. 영어 졸라 못하는데..’ 그 생각을 했죠. 다행히도 그런 일 없이 이민자 신분 하고 전에 번역했던 거 샘플을 보낸 걸 기초로 해서 컴퓨터 서적 번역을 시작했죠. 번역 다 끝내 놓고 출판을 안 하기로 한 책도 한 권 있었지만 출판사의 책 한 3, 4권을 번역했어요..
이거를 기반 삼아서 민프레스(게임개발 전문 출판사, 란 온라인 제작사)에서 ‘DirectX RPG 만들기’ 란 책도 번역을 했어요. 그 책은 좀 더 돈이 됐어요. 번역은 웬만한 건 아주 나쁘진 않게 했다고 생각 하구요.. 적당히 했었고, 물론 쫌 망친 번역도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경력을 쌓았죠.
그리고 코리아헤럴드통번역센터라던가 팬트랜스넷이라든가 이런 데서도 프리랜서 번역자를 구하는 게 있더라고요. 여기는 그냥 웹 페이지 가서 샘플 다운 받아서 번역해서 보내고 번역자 신청을 하면 그쪽에서 일을 주더라구요. 번역일을 처음할 때는 워낙 영어도 못해서 A4 한 장 번역하는데 1시간 넘게 걸리고 해서 받는 돈은 되게 적었어요. 최저임금 절반도 안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장에 그 당시에 천 원 정도 봐 왔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 시간 넘게 해서 천 원 받는 거였죠. 하지만 이때 쯤에는 제가 실력이 많이 올라서 1장 번역하는데 보통 30분이면 됐었고, 장당 8천원 ~ 만원까지 받아봤던 것 같아요. 솔직히 ‘내가 번역만 해도 이제 먹고살겠구나.. 차라리 조그만 마을에 들어가서 우편으로 번역일 받으면서 먹고살까?’는 생각도 잠시 했었죠.
그 외에 Microsoft XNA (Xbox 360과 윈도우즈를 위한 그래픽)도 했었고 정부에서 하는 게임아카데미에서 나온 책 중에도 제가 번역을 한 게 있어요. (소프트웨어 공학과 컴퓨터 게임)
BCIT를 제가 2003년 9월에 입학했던 걸로 기억 하거든요. 이민은 2002년에 들어왔구요, 1년 반 정도를 하루에 18시간씩 엄청나게 번역 일을 했어요. 번역해서 모은 돈으로 BCIT를 졸업할 때까지 버티자... 이런 계획으로 번역 일을 해서 돈을 정말 많이 벌었어요
제가 처음에 번역한다고 했을 때 ‘이제 나는 이민자니까 될 것 같아. 한번 지원을 해 볼래’라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저희 뭐 가족들도 ‘좀 말이 안 되지 않냐?’ 고 했는데 저는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내가 출판사 사장이라고 봐도 얘가 번역한 샘플이 책 한 권 정도고, 이민자라 그러고...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그리고 이미 출간을 한 책도 있었기 때문에 저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출판사 한 군데 이메일 1번 보내는 건 길어야 30분 걸릴까요? 그러면 30분씩 출판사 몇 군데 돌리면 한몇 시간 걸려서 노력해 보는 거? 나쁘지 않겠다 생각을 했어요. 오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어차피 접시 닦기 할 생각이었으니까.. 저는 이렇게 여러 번 두들겨 서 된 거고요, 직장 잃고 할 일 없으면 백업 플랜에 있어서도 마음 편하고요.
주변에서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많아요. 근데 ‘정말 안 된다’라는 말만 듣을 게 아니라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보면 될 것 같아요. 나의 이력이나 포트폴리오를 담당자가 봤을 때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두들겨보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해요.
번역자가 되기 위해서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아요. 공증서류 번역하는게 아닌 일반 번역 일에서는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책 번역은 솔직히 돈이 안 돼요. 가장 권하고 싶은 것은 코리아헤럴드통번역센터나 팬트랜스넷 같은 용역회사의 홈페이지에 가셔서 프리랜서 지원 신청을 하면은 그쪽에서 문제가 없으면 보통은 일을 줘요. 이쪽은 책이 아니라 어떤 회사의 홍보자료나 팜플렛부터 한국의 국무총리님이 보내시는 무슨 급한 편지도 하나 했었고 한영 번역을 했을 수도 있지만 영한 번역을 주로 했고요. 평가도 해서 실력에 따라 일을 계속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고요. 저는 그때 제가 A급은 아니고 한 B급 정도 되는 것 같다라고 들었지만 그래도 일을 얻는 데는 문제가 없었어요.
이게 제가 번역자가 되는 것에 대한 정리고, 번역자가 아니더라도 뭔가를 도전하는 거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가능해 보이고, 그 길로 가는 시간이 많이 낭비되지 않으면 두들겨 보는 게 좋아요. 그게 자격증을 받겠다고 시험 보고 몇 달 낭비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빠른 일이고요, 생각만 하다가 번역 못 하는 것보다 차라리 실패를 하는 게 나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