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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자

wookay edited this page Dec 5, 2014 · 11 revisions

淮南子

유안 지음 이석명 옮김 소명출판

해제 解題

한나라 초기, 회남 지역의 제후인 회남왕 유안은 천하의 인재들을 불러 그들과 수많은 저술을 남긴다. 여러 방술가들과 유학자들을 모아 도가를 중심으로 하는 잡다한 사상과 철학을 논하고 있다.

p24. 당시의 일부 사람들은 아무런 노력이나 공부도 하지 않은 채 단지 "고요함을 상도로 삼고 염담함을 근본으로 삼은 채" 나태와 게으름에 빠져 있으면서, 그것이 마치 도를 깨달은 자의 위대한 모습인 양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남자에서 볼 때 이들은 도를 제대로 이해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도의 껍질만 보고 그것이 본질인 양 거기에 매달려 있는 자들에 불과하다. 뒤집어 말하자면, 참으로 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정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도는 단지 청정과 염담을 통해 체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도의 표상만 본 자들이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은 채 단지 개인적 욕망만 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남자에서는 그런 행위들을 "대도를 깨닫지 못한" 행위 즉 '막힌 무위'로 비판하고 '열린 무위' 즉 참된 무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머리말 敍目

회남자의 초기 주석가인 고유가 회남자의 편찬 동기를 적었다.

신서를 지은 가의도 등장한다.

p41. 맏아들 유안은 그의 아비를 계승해 회남왕이 되게 하였고 둘째 아들은 형산왕으로 셋째 아들은 여강왕으로 각각 봉해 주었다. 이때 태부 가의가 간하여 말하길, "원수의 아들을 존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회남왕과 형산왕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과연 가의의 말처럼 되었다.

삼국지의 유비 스승으로 등장하는 노식 선생도 나온다.

p45. 시중을 지냈고 나와 같은 고향 사람이었던 노식 선생의 문하에서 나는 어려서부터 이 책을 배워 그 대체적인 의미를 익혔다. 그 후 온 천하에 군웅이 할거하는 전쟁 상황을 만나 서적들을 잃어버려 이 책을 연구하지 못한 지 20여 년이 되었다.

제1편 원도 原道

p90. 신명에 통한 사람은 내면을 얻은 자이다. 그러므로 내면에 의해 외부의 욕망을 제어하면 잘못되는 일이 없고, 내면이 제자리를 찾으면 외부의 일들을 잘 처리할 수 있다. 즉 내면이 제자리를 찾으면 오장이 평안하고 생각이 안정되며, 근력이 강해지고 귀와 눈이 밝아지며, 널리 통달해 어그러지는 일이 없고, 정신이 강해져 꺾이지 않는다. 너무 넘치는 것도 없고 미치지 못하는 것도 없으며, 작은 곳에 머물러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큰 곳에 머물러도 헐렁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사람의 혼은 조급함이 없고 정신은 번거롭지 않으니, 그 맑고 고요함은 온 세상 사람들의 본보기가 된다.

p91. 위대한 도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어서 내 몸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으니, 도를 찾아 멀리 나가는 사람은 결국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p93. 내가 말하는 즐거움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 얻어야 할 것'을 얻는 것을 말한다. 무릇 자신이 진정 얻어야 할 것을 얻은 사람은, 사치를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고 가난을 슬픔으로 여기지 않으며, 음기를 만나면 자신을 닫고 양기를 만나면 자신을 열어 놓는다.

제2편 숙진 俶眞

p111.

有始者 有未始有有始者 有未始有夫未始有有始者 有有者 有無者 有未始有有無者 有未始有夫未始有有無者 유시자 유미시유유시자 유미시유부미시유유시자 유유자 유무자 유미시유유무자 유미시유부미시유유무자

장자의 제물론 편과 비교

有始也者 有未始有始也者 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 有有也者 有無也者 有未始有無也者 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 유시야자 유미시유시야자 유미시유부미시유시야자 유유야자 유무야자 유미시유무야자 유미시유부미시유무야자

p113. "나는 무의 상태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무조차 없는 절대 무의 상태는 알 수 없소. 무조차 없는 절대 무에 이르다니, 어찌 그 지극한 미묘함을 헤아릴 수 있으리오!"

p134. 무릇 하늘이 안정되지 않으면 해와 달을 실을 수 없고, 땅이 안정되지 않으면 초목을 심을 수 없다. 자기 자신이 안정되지 않으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인이 된 이후에 참된 앎(眞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잡고 있는 것이 밝지 않으면 내가 말하는 앎이 참된 앎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p155. 옛날에 덕이 지극히 높았던 세상에는 다음과 같았다. 상인은 자기 가게에서 편안히 장사하였고, 농부는 자기의 업인 농사짓기를 즐겼으며, 대부는 자기 직책에 만족하였고, 처사는 편안히 도를 닦았다. 이때에 바람과 비는 사물을 망가뜨리지 않았고 초목은 일찍 죽지 않았으며 구정은 묵직하였고 구슬과 옥은 광택이 났으며 낙수에서는 단서가 나왔고 황하에서는 녹도가 나왔다. 그러므로 허유 방화 선권 피의는 모두 도를 얻을 수 있었다. 어째서인가? 당시의 임금이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서 스스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위의 네 사람의 재주는 가장 뛰어났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이름들이 크게 떨쳤으며 오늘날에도 아무도 그들과 명예를 겨룰 만한 사람이 없다. 이는 그들이 요순시대와 같은 좋은 때를 만났기 때문이다.

하나라 걸 임금과 은나라 주 임금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산 사람을 태워 죽이고 충간하는 사람을 찢어 죽였으며 포락지형을 행하기 위해 쇠기둥을 주조하였고 현인의 심장을 꺼내고 재주 있는 선비의 정강이를 꺾었으며 귀후의 딸을 소금에 절이고 매백의 해골을 젓에 담갔다. 당시 요산이 무너지고 삼천이 말랐으며 날아가던 새의 날개가 꺾이고 달리던 짐승의 다리가 부러졌다. 당시에 어찌 성인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이 도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은 제대로 된 세상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무릇 천 길 높이를 나는 새나 울창한 숲 속을 달리는 짐승도 화를 당했는데 하물며 일반 백성과 서민의 경우는 어떠하였겠는가! 이런 것으로 볼 때 도를 얻는 것은 단지 나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세상의 상황에도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3편 천문 天文

허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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